6월 28일, 비 소식이 들린 날 아침.
기상청 예보는 오전 중 약한 비가 살짝 내리다 곧 그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나는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고대산 (高臺山)'으로 산행을 나섰다.
◈ 고대산 – 뜻밖의 난이도와 만남
고대산은 해발 832.1m로, 연천과 철원의 경계를 따라 솟아 있는 산이다.
비교적 대중적으로 알려진 산은 아니지만, 의외로 등산로가 꽤 가파르고 굴곡이 많은 산이었다.
오르기 시작할 때는 잠시 땀을 식히는 정도의 가벼운 비가 내렸지만, 3부 능선을 넘어서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정상까지 가는 계획은 과감히 접고, 우회로를 따라 칼바위까지만 오르기로 했다.
비에 젖은 바위와 진흙, 그리고 미끄러운 나무 뿌리는 등산자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마음은 신기하게도 조급하지 않았다.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나아가자고 스스로를 달래며, 칼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하산길을 택했다.


♠ '치유숲길', '무장애산책로' – 빗소리와 함께 걷는 명상
내려오는 길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치유숲길’과 ‘무장애 산책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이 선택이 정녕 탁월한 선택이었다.
양 옆으로 빽빽이 들어선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잎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 정적이었고, 그 어떤 힐링보다 깊이 있었다.
물방울이 쌓인 나뭇잎이 바람 따라 흔들릴 때마다 자연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꼈다.
한 걸음 한 걸음, “꾹, 꾹” 땅을 누르며 걷는 그 감각.
산행이란 결국 내 발로 지구의 피부를 직접 느끼는 행위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 걷는 것의 감동, 그것이 산행의 묘미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비에 젖은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가볍고 기뻤다.
‘산행의 묘미’란 결국 걷는 것 그 자체에서 오는 감동과 기쁨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 하루였다.
정상을 밟지 못해도, 그날 내가 디뎠던 수많은 발걸음 속에
이미 산의 모든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비 오는 날의 고대산.
이날은 정상보다 더 깊은 자연의 속살을, 더 진한 산행의 철학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걷는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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